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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 있는 공간

Writer's picture오천호 목사

[9/18] 지독한 긍휼하심(느 9: 19-31)

오늘 본문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표현(단어)은

‘하나님의 크신 긍휼하심'이다

(19절, 27절, 28절, 31절)

     

심지어 28절은

‘여러 번

주의 긍휼로 건지셨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긍휼하심은

언뜻 좋은 말씀처럼 생각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무서운 긍휼이고

지독한? 긍휼하심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 만큼이나

지독한 것은

이스라엘의 악함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을

수 없이 맛보았다.

     

하나님은 크신 긍휼로

선한 영을 주셔서

가르치셨고(20절)

     

만나와 먹을 물을 주시면서

이스라엘로 부족함이

없게 하셨다(21절)

     

또한 땅을 자지하게 하셨고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들도 주셨다(22절)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았고

말씀을 거역하며

선지자들을 죽였다(26절)

     

문제는 그러한 불순종과 불신앙이

계속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라가 망하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조금 숨쉬고 살만하면

다시 불순종하고

목이 굳은 삶으로 살았다

(29절, 30절)

     

참 지독한 불순종이고

지독한 교만이다.

     

그것이 죄의 모습이고

나의 정직한 모습이 아닐까?

     

왜 이렇게

잘 변화되지 않으며..

     

다시 원래의 죄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할까?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은

그러한 악한 이스라엘을

무조건 내버려두시는

긍휼하심이 결코 아니시다.

     

하나님은 그들이 악할때마다..

     

매번 깨트리시고

매번 때리시고

고통을 주신다.

     

주님은 그의 백성을

악인들의 손에 넘기셨고

고통당하게 하셨으며(27절)

     

다시 이스라엘이

악을 행할 때

또 원수들의 손에

버려두셔서

아프게 하셨다(28절)

     

그 후 다시 말씀하시고

깨우치지만

듣지 않은 이스라엘을

또 다시 열방의 손에 넘기셨다(30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크신 긍휼하심은

끝까지 포기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같은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클수록

나를 깨트리심과

아프게 하심도 크다.

     

마치 악한 길로

계속 살아가는 자녀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부모의 마음과 같다고 할까?!!

     

물론 내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이

하나님의 심판은 아니지만..

     

인생의 모든 고난과

아픔에는

     

숨어 있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지독한 사랑이 들어 있다.

     

너무 나를 사랑하시기에

평생 나의 삶이 광야일 수도 있다.

     

그런데 더 지독한 긍휼하심은

심판과 고난을 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사랑과

은혜안에 있다.

     

하나님은

그 악한 이스라엘이

다시 돌이켜 기도할 때마다..

다시 긍휼을 베푸셨다.

(27절, 28절, 31절)

     

여러번..

다시 긍휼을 베푸셨으며(28절)

     

심판하시는 중에도

여전히 사랑을 베푸시고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셨다(31절)

     

지독한 심판 중에도

끝까지 사랑하시고

끝까지 긍휼을 베푸신다.

     

그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과

긍휼하심을

내가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인간적인 계산과

상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크시고 지독한

하나님의 긍휼이고

은혜이며 사랑이시다

     

그리고 그것이

십자가와 주님의 보혈이 아닐까?

     

가치가 없는 죄인을 위해..

가장 귀한 분께서

스스로 죽어가신

지독한 은혜와 사랑!!

     

그 사랑과 은혜와 긍휼하심 앞에

내가 무엇을 자랑하며

내가 무엇을 내세울 수 있을까?

     

그 십자가와 사랑 앞에

오늘도 엎드릴 뿐이다.

     

오늘도

나의 이 지독한 죄를 아파할 수 있기 원한다.

     

그리고

그 포기하지 않으시는

크시고 크신..

주님의 긍휼하심 안에서

     

감사와 소망으로

찬양하며..

     

오직 십자가 하나만을 붙잡고 걸어가는

소중하고 귀한 나의 하루가 될 것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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