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 왕이 죽고
므낫세가 왕이 되어
유다를 55년 동안
다스리게 된다(1절)
그런데..
므낫세는
히스기야 와는 다르게
다시 악을 행하며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태양과 달의 신을
예배했다(3절)
므낫세가 왜 이렇게
다시 우상을 섬기게 되었을까?
2절에서는
이방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 했다고 말하며..
3절에서는
아합의 행위를
'따라서' 했다고
기록한다.
우상이 보여주는 화려함과 우상을 섬기던
세상의 모습이
그의 마음에 더 끌렸던 것이다.
므낫세는
우상들이 보여주는 풍요와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살았다.
또한 므낫세는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성전에 세웠다고 했는데(7절)
자신의 생각과 욕심을 따라서
우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내 생각과 욕심이 그리고 세상의 목소리가
므낫세의 마음에
가장 중요한 목소리? 였다고 할까!! 반면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이름을
예루살렘 성전에 두신다고
말씀하셨고(4절, 7절)
하나님을 따를 때
그들이 세상에 떠도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실 것도
말씀하셨다(8절)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9절)
오히려
'므낫세의 꾐'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 뜻은
므낫세의 말을 듣고
므낫세의 모습을 따랐다는
의미이다.
므낫세는
세상과 자기의 목소리를
듣고 살았고..
백성들은
므낫세의 말과 그의 목소리를
듣고 타락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목소리가
그들의 마음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삶은 어떠한가?
오늘 나의 마음과 삶에
가장 크게 들리는 것은
어떤 목소리일까?
내 감정에서 나오는 목소리..
내 경험에서 나오는 목소리..
내 욕심과 교만이 말하는 목소리..
내가 만난 환경과 문제가
나에게 위협하는 목소리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목소리인가?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목소리가 아닌
내 목소리와
여러가지 혼란한
세상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익숙하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않고
수많은 혼란한 목소리에
파묻혀서 살아가는 삶..
이 아침
다시 주님 앞에
서기 원한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수많은 복잡한 목소리를 멈추고..
주님의 음성과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임재를 깊이 묵상하며 그 목소리를
듣고 사모하기 원한다.
나의 목소리와 내 욕심과 내 뜻이 아닌
주님의 선하신 뜻과
주님의 선하신 통치가
나의 마음과 삶과
모든 곳에 넘치므로..
주님의 목소리가
나를 다스리시는
복된 하루가 될 것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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