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 왕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등장한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 보시시기에
좋은 왕이었다(2절)
그러나
그가 왕으로 다스리던 때는
매우 혼란하고
타락한 시대였다.
5절 말씀은..
'그의 전후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다' 고
말한다.
그만큼
모두가 세상의 풍속대로
살았던 시대이다.
히스기야는
여러 우상들과 산당을 제거하였는데
지도자에서부터 시작해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종교지도자들까지)
모두가 타락한 시대였다.
뿐만 아니라
히스기야가
왕으로 다스리던 때에..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하여
망하게 된다. (9-11절)
비록 유다 나라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망한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앗수르는 북쪽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후
남쪽으로 내려와서
유다와 애굽을
공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의 개혁?은
환영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국가적으로 어려웠고
왕들이나 백성들
모두 부패해 있었으며.
히스기야 자신이
유다나라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분주하고 어려운 상황이었다.
마치 오늘날
나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같다고 할까?
분주하며..
혼란스럽고..
하나님을 찾을 만한 상황이
결코 아니다.
아니 그것은
인간의 모든 역사 속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을 찾을 만하며
하나님과 동행할 만한 상황은
언제나 계속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잠시 상황이 좋은 것 같지만..
곧 삶은 분주해지고
내 마음에는 여러가지 도전이 생긴다.
그런데
이러한 환영받지 못하고
분주하며
좋지 않은 상황에서...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였고(5절)
하나님과 연합아여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다(6절)
시간이 있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하나님과 동행한 후에
나머지 삶의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삶의 중심을
(즉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행하는 중심)
바르게 세우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연합하는 중심은
언제나 나중이며
쉽게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기도와 말씀과
순종이라는 중심을
먼저 세우지 않는다면..
주변의 상황과 내 마음과
분주한 일들은
그 중심을 늘 빼앗아 가버린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히스기야가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그가 가는 곳에 형통을
주셨다는 것이다(7절)
여기에 말하는 '형통'은
단순히 잘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동행하는 삶의 중심이
흐트려지지 않는 모습을 말한다.
흥미롭고 감사하다.
비록 완전하지는 못해도
다시 삶의 중심을 잡으려고
하나님께 연합하려고
기도를 시작할 때..
말씀을 다시 붙잡을 때..
하나님은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형통의 길을
더 열어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삶의 중심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삶의 중심에 서 계신
하나님앞에 설 때..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서
내 삶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삶이 되도록 만들어가신다.
얼마나 감사한 삶이고
은혜인가!!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내 마음은
늘 여러 가지로 변하지만..
내 가운데 중심이 되시는
주님 앞에 다시 서며
그분을 붙잡기 원한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수많은 여러 상황속에도
나를 견고하게 하셔서
흔들리지 않으며
올바른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오늘도 나의 진정한 중심을
회복하실 것을
나는 믿는다.
오늘도
내 삶의 중심을 회복하게 하시며
견고하게 하실
그 주님을 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