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북쪽 이스라엘이
패망하게 된 원인을
설명하는 동시에..
북쪽 이스라엘이
없어진 후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34절에 보면..
‘그들이’
이전 풍속대로
오늘까지
살고 있다고 했는데..
여기에 ‘그들은’
북쪽 이스라엘이
망한 후에
새롭게 들어온
여러 민족과
북쪽 이스라엘 지역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두를 말한다.
즉 북쪽 이스라엘이 망한 후에
앗수르에 의하여 시작된
새로운 백성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특징은
풍속대로
즉 세상의 방식 대로
(혹은 그들이 배운 대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34절)
그런데 40절에서 말하는
‘그들은’ 조금은 다르다.
40절에 나오는 그들은
원래부터
북쪽 이스라엘 지역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한다.
하나님은 옛적에
(이스라엘이 망하기 오래 전부터)
야곱의 자손(이스라엘) 에게 말씀하셨다.(35절)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36절)
여호와의 언약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38절)
그러나
그들은..(40절)
즉 원래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이 언약을 기억하지 않고
이전 ‘풍속대로’ 살았다(40절)
흥미롭고 안타깝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지 않고
자신의 풍속대로 살았다.
내 본성대로.
주변이 살아가는 대로..
내가 좋아하든 대로
살았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물론
그 나라가 망하게 된 것도
아픈 결과이지만.
그 북쪽 이스라엘 땅에
이방인들이
들어와서 살아감으로써...
이제는 더 세상의 풍속대로
살아가는
황폐한 땅이 된 것이다.
그것이 사마리아의 모습이다.
세상의 가치관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풍속을 거슬러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본성대로 악해지고
내 마음대로 교만해 진다.
그런데 풍속대로 살면
갈수록
더 풍속대로 살게 된다.
점점
더 어두워지고
더 욕심 가운데 살며
더 내 감정과
내 뜻대로 산다.
세상과 욕심과 감정에
노예가 된다고 할까?
그리고 그것이
풍속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가장 무서운 심판일 것이다.
돈과 칭찬과
내가 자랑할 것이 없어서
아프고 심판받은 삶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살면서
그 아픔을 보지 못하고
더 교만해 지고
더 어두어 진다면..
그것이 가장 큰 심판일 것이다.
반면..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한다는 것은(38절)
매우 외롭고
세상의 풍속을 거슬러서
살아가야 하는 길이다.
그래서 끝없는
회개와 고민과 갈등이
‘언약을 기억하는 삶’ 속에 있다.
하지만
언약을 붙잡고 이루시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라’고 하신다(38절)
내가 언약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언약을 붙잡고 계신다.
단지 나는 그 언약을
기억하고 기도하면서..
하루 하루 걸어갈 뿐이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언약을 기억하고 걸어가는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붙잡고 직접 이루셔서
백성들(나)을 건져내시며..
나의 길을 인도하신다(39절)
어둡게 살 수 밖에 없는
이 땅의 삶 속에..
생명을 주시고
깨어 있게 하시며
자유하게 하신다.
비참한 교만이 아니라
행복한 겸손과
헌신과 깨어 있는 삶을
내 안에 만들어 주신다.
그러한 ‘깨어있음’ 과
‘겸손’이야 말로..
언약을
기억하는 삶에 주신
최고의 축복일 것이다
오늘 이 하루도..
풍속대로 살지 않고..
조금은 불편하지만..
언약을 기억하고
그 언약을 따라 살며..
그 언약을 붙잡고
기도함으로
살아가기 원한다.
오늘도 그 언약을 붙잡고 직접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의 삶 속에
세상의 풍속과 문화를 넘어서는
자유와
깨어있는 마음과
기쁨과 성장을
허락하실 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