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이스라엘 왕
예후를 이어서..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다.(1절)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사람이었다(2절)
그런데
아람왕이 이스라엘에 와서
백성들을 어렵게(학대) 할 때
여호아하스는
하나님께 기도한다(4절)
그의 아버지에게 배운 것일까?
예후는 선한 왕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이러한 여호아하스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셔서
그들에게 구원자를 보내신다 (4-5절)
그런데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여호아하스의 기도에
응답하신 이유가
그들이 즉 이스라엘백성이
학대받는 것을
하나님이 보셨기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한다(4절)
여호아하스가 선하고
그의 기도가 좋아서
하나님이 들으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아픔을 보시고
구원하시기 원하셨던 것이다.
백성들의 학대받는 것을
보시는 하나님..
그리고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어떤 자격이 있어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은혜와 긍휼 때문에
기도에 응답하시며
아픔과 어려움에서
건져주시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하는
기계(우상)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사랑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를 대하신다.
기도응답을 넘어서
자신의 긍휼과 사랑으로
기도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하나님이
여호아하스의 기도를
응답하시지만..
그(왕)와 백성들은
다시 우상을 섬기고
악한 길로 돌아갔다는 것이다.(6절)
그리고 그 결과
여호아하스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7절)
그러므로
여호아하스가 원한 것은
기도의 응답 즉 문제의 해결이었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했을 뿐..
하나님의 긍휼과 그 마음을
기뻐하지도
그리고 사모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결국 하나님이 없는
황폐함과 비참함으로
그의 삶이 마치게 된 것이다.
나의 삶은 어떨까?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응답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우상숭배했던
여호아하스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기도 응답보다는
하나님 자신을 원하는
그러한 삶과 신앙을
살고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 보다는
내 편안함과
내 욕심과
내 감정과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여호아하스의 우상숭배와
무엇이 다를까?
나는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원하기보다는
동행과 사랑을
더 원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
실재로는
내 욕심을 섬기며
내 자신을 높이면서
또 다른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삶은 아닐까!!
하나님 자신 보다
하나님의 기도응답을
원하는 모습이든..
내 자신의 힘과 열심으로
내가 스스로 만들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살아가는 것이든..
결국..
그 모든 것은
또 다른 우상숭배가 될 것이다.
이 아침에
다시 회개하며
내 안에 숨겨진
여호아하스의 우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원한다.
그리고 다시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소망이 되며
내 편안함과 생각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동행하는 것이
내 인생이
걸어가는 길이되며
그것만이
내가 원하는 것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나의 선함이 아니라
그의 긍휼로 인하여
부족한 나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