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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 있는 공간

Writer's picture오천호 목사

[7/18] 나의 마지막(왕하 12: 9-21)

유다 백성들은

성전의 수리를 위하여

마음을 다해서

물질을 드렸고(9-10절)

     

여러 기술자들에게

일을 맡김으로

성전을 잘 수리하였다(11-14절)

     

이러한 일은

요아스 왕의 관심과

수고 가운데 이루어졌기에..

     

분명 요아스 왕은

여러 가지 선한 개혁과

회복을 이루었던

좋은 왕이었다.

     

그런데

요아스의 마지막은

좋지 못했다.

     

그를 이끌던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후

요아스왕은 계속

타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아람과의 전쟁이 있을 때,

     

요아스 왕은

성전과 궁전에 있던

여러 가지 물건들과 금을

아람왕에게 줌으로써..


전쟁을 마치는 장면이

나온다. (17-18절)

     

물질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분명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모습이다.

     

또한

요아스는 그의 신복들이

반역하여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20절)

     

역대하 24장은

그 이유를 설명한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이

요아스 왕의 타락에 대하여

책망한 일이 있었다.(대하 24: 20)

     

역대하 말씀은

그때에 요아스 왕이

그 아들을 죽인 일 때문에

이러한 반역이 있었다고 말한다.(대하 24: 25)

     

요아스 왕은

그의 삶이 마지막으로 갈수록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의지했고

     

진정한 책망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결국 비참하게 죽게 된 것이다

     

그는 분명

출발이 좋았고

여러 가지 열매들도 많았다.

     

하지만

요아스 왕의 마지막은

탐욕과 불신과 교만이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경우

출발이 좋고

인생의 열매도 많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욕심과 두려움과

교만으로 추해지는 것을

많이 본다.

     

그것이 인간의 죄성이 아닐까?

     

여러 가지 좋은 일을 하고

믿음으로 살았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내 삶이 깨어지지 않으면..

     

결국은 욕심이 다시 살아나고

교만이 더 커지며

내가 가진 것에

집착하게 된다.

     

나의 마지막은 어떠할까?

     

나 역시

이러한 추하고 잘못된 마지막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


주님을 사랑하며

내 자신이 죽어가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주님앞에 설 것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나의 마지막은

요아스 처럼

냄새나고 추한 모습이

될 것이다.

     

나의 마지막을

칭찬받은 모습이나

영광스러운 성공으로

마치려고 할 때..

     

나는 더 추해질 것이다.

     

낮은 자로서..

깨어진 삶으로서..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고

높이는 삶으로서..

인생을 마치며

     

오직 주를 영화롭게 하는

그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는..


나의 마지막이 되기를

오늘 하루도

연습하고

기도하고

준비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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