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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 있는 공간

Writer's picture오천호 목사

[7/11] 인생의 마지막(왕하 9: 27-37)

오늘 본문에는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유다의 왕인

아하시야이고(27절)

     

다른 한 사람은

역사상 기억남을 만한

악한 여인..이세벨이었다( 33절)

     

두 사람은

모두 왕과 왕비라고 하는

막강한 힘과

부요함를 누린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인생의 마지막은

초라하다 못해

비참했다.

     

아하시야는

왕이지만

비겁하게 도망가다가

길에서 죽임을 당했고(27절)

     

이세벨은

높은 곳에서 던저져서

     

그의 시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는데(34-35절)

     

그의 시체를

개들이 먹었다(36절)

     

인생은 영원하지 않고

잠시 살다가

모두 죽음에 이른다.

     

하지만, 위의 두 사람은

그 마지막을

생각하며 살지 못했다.

  

오히려 두 사람의 삶이

화려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죽음은

더 비참해 보인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이세벨은 아들이 죽임을 당하고

     

반역이 일어났음에도

     

자신은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있었다(30절).

     

인생을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답게 살더라도

     

그것은 잠시이며

결국 모두 죽음에 이른다.

     

그리고

모두 주님 앞에 서게 된다.

     

주님은

우리가

주앞에 서는 날에..

     

살아있는 동안

행한 것을

드러내시며

상급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 상급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주님을 위해 순교한 삶과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나의 유익과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삶과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그러므로

오늘에 있을

잠시의 영광과 편안함이 아니라

     

주님 앞에 서게 될

그 영광을

소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지혜롭고

행복한 삶일 것이다.

     

주님 앞에 설

그 날을 소망하며 살 때

오늘 하루를 겸손하게

살 수 있으며

     

분명한 목적과 비전을 가지고

걸어갈 수 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그냥 허비하며

내 삶의 욕심으로 살아가는가?

     

아니면

주님 앞에 서야 할

그 날을 바라보며

     

오늘 깨어 있고

준비하고

나를 보내신 사명으로 살아가는가?

     

부자이고 힘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비참한 마지막을 맞는

그러한 삶이 아니라

     

가난하고 작더라도

영광스러운 인생의 마지막..

     

영원한 주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심는 것을


주님 앞에서

기쁨으로 거둘 수 있는


그러한

나의 인생의 마지막이 되기를

기도하며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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