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본문에 나온
수넴 여인에게 주셨던
그 아이가
자라났지만(18절)
어느날 갑자기
죽음에 이르게 된다(20절)
'왜 하나님이
그 아이를 죽게 하셨을까?'라는
질문보다는..
인생은 모두
병듦과 죽음의 길 가운데
있다는 것을
다시 묵상하기 원한다.
하나님은
인생의 아픔과
죽음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생이라는 말 자체에는
죽음과 병듦과 약함이 있다.
이렇게 아들이 죽은 가운데
수넴여인은
아들이 태어날 것을
말해주었던
엘리사에게 찾아간다.(24-27절)
그리고
엘리사를 향해
원망하는 마음으로..
‘ 내가 아들을 구하였습니까?’
‘ 나를 속이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한다.(28절)
수넴여인의 마음과 아픔은
충분히 공감이 되지만,
그녀의 마음은
고난 앞에서
자신에게 주셨던 기적과
은혜에 대하여
오히려 원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여인은 원래부터
아들이 없었고
아들을 주신 것은
철저하게 은혜였다.
그런데 그 아들이 사라지자,
아들을 주신 하나님과
선지자를 원망했다.
그것이 나와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
나에게 주셨던 은혜가
크지만
그 주신 것이 사라질 때
내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며
원망하고 좌절한다.
지난 날
여러 가지 방법과 상황속에서
인생을 살 수 있고
목회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런데
목회의 상황이나
삶의 어려움이 생길 때,
왜 내가 수고한 것의 열매가 사라지고
왜 나에게 이러한 어려움이 생기는지
생각하며 원망하는 내 자신을 본다.
결국 내가 살아가는 자체가
철저하게 은혜인데
은혜가 마치 당연한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나의 착각이고
무감각한 마음이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엘리야가 했던 방법과 비슷하게)
죽은 아이를 살리셨다(35-37절)
처음 아이에게 생명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며
죽은 아이에게 다시 생명을
주신 것도 철저하게 은혜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신다.
은혜를 주시며
다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물론 하나님의 은혜의 방법과
인도하심은 다 똑같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은혜의 방법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보통의 방법은 아니시다.
그럼에도
생명을 주신 하나님은
그 생명을 책임지시고
그 생명을 새롭게 하시며
보호하시며
다시 은혜를 주신다.
그 은혜를 소망하고
구할때
언제나 은혜를 다시 허락하신다.
이 땅의 생명도
다시 살게 하시지만
영원한 생명을
주심으로
은헤베푸신다.
그 아이도 결국은
언젠가 다시 죽었겠지만,
그 아이를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며
그가
영원한 생명과 은혜를
누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더 큰 은혜가 아닐까?
이미 주셨던 은헤
그리고 다시
주시는 은혜..
나의 삶이든..
사역이든..
언제나 다시 베푸시는
은혜 안에
살고 있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 모양과 방법과 시간은
내 생각과 다르지만
나보다 더 정확하게 섬세하게
나의 길을 아시며..
내 생각보다 더 신실하게
그 은혜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바라본다.
비록 오늘 나의 삶의
애통과 고통이 있지만
다시 은혜..
다시 생명..
다시 회복을 주실
주님을 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