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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 있는 공간

Writer's picture오천호 목사

[6/14] 어떤 신앙을 따를 것인가?(벧후2:12-22)


어제 본문에 이어서

사도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에게 임할

심판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그런데

사람의 얼굴에

거짓 교사라고

쓰여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거짓 교사이지만

교사라는 말이

붙었다는 것은

     

신앙의 영향력을 주거나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믿음을 위하여

내가 따르는 인물이

거짓 교사일 수 있고

     

나 역시

거짓 교사가

될 수 있다.

     

베드로는

당시에 교회안에

잘못된 신앙의 모습,

     

거짓교사로 인한

아픔을

기록하면서

     

교회와 성도가

주의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거짓 교사의 특징은

몇 가지가 있다.

     

그들은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뻐한다,(13절)

     

본향을 위하여

준비하며

깨어 있지 않고

오늘 즐기는 것이

중심이 되는 신앙이다.

     

또한

거짓교사는

자신들이

탐심이 가득할 뿐 아니라(14절)

     

다른 이들도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끈다(14,15, 18절)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목적이기보다

     

자신들의 유익과

이 땅의 편안함이

신앙의 목적이 되는 모습이다

그리고

모든 죄의 특징처럼,

     

거짓 교사는

허탄한 자랑을 한다(18절).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행하심만을

자랑해야 하지만

     

순간 순간

자신의 삶이나

신앙과 의를

자랑하고 높인다.

     

이 모든

거짓 교사들의 특징보다

더 아픈? 것은

     

거짓교사는

은혜를 어느 정도

맛본 자들이라는

것이다.(20절)

물론

20절-22절에서 말하는

의를 맛보고

그것을 버리는 모습이

     

거짓 교사들 때문에

믿음을 버리는

배교자?들을

말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렇게

어느정도 은혜를

경험한 것은

거짓 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그 은혜가

진정한 것인지

다 알 수 없지만..

     

거짓 교사나

배교자들 모두

     

어느 정도의 은혜와

     

어느 정도의

믿음의 경험과

     

어느 정도의

성경지식을 가지며

교회 봉사를

했던 인물들이다.

     

거짓 교사의 특징!!

     

이 땅의 삶을

즐기는 것이 목적이고

     

욕심으로 살아가며,

     

자랑하지만

     

어느 정도

은혜를 맛본 삶!!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거짓 교사에

해당되지 않는

삶이 있을까? 신앙은

누군가의 모습을

보고 따라가는

특징이 있다.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지만

     

결국

어떤 선배나 성도의

선한?모습을

바라보며

     

그것을 모범으로

여기며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

아픈 것은

너무 많은 경우

     

잘못된

신앙의 모습을

모범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아무리

겉으로 좋아보이고

대단해 보여도..

     

아무리

은혜를 받은 것처럼

보여도

     

이 땅의 삶만을

중요하게 여기며..

     

탐심으로 살아가며..

     

자신을 자랑하고

있다면..

     

그러한

신앙의 샘플?은 철저하게

주의해야 한다.

     

아니 반대로

혹시

나의 믿음과 삶이

     

자랑과

탐심과

이땅의 즐거움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철저하게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내가 과거에

어느정도

은혜를

경험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늘 깨어

겸손함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주님 앞에 설 것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탐심과 음란과

헛된 것들이

당연한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면..

     

아파하고

돌이키고

회개해야 한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면서

     

그 나라의 부흥을

기뻐하다가

     

주님앞에 서야 할

종에 불과하다.

     

내 자랑과

내 의가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과

그 이름을 위해

     

그 나라가

온 땅에 드러나는 것을

위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해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자.

     

이 시대의 교회와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모양으로 간다고 해도

     

흔들리지 말고

깨어서

준비하며

     

기도와 말씀과

겸손으로

양식?을 삼고..

     

하루 하루

저 본향을 향해

걸어가는

내 자신과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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