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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 있는 공간

Writer's picture오천호 목사

[6/13] 진정한 은혜(벧후 2:1-11)


베드로 사도는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셨고

또한 심판 하실 것이라고

강조한다(3절)

     

거짓 선생의 특징은

주를 부인하고

욕심에 사로잡혀

진리를 방해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이다(1-3절)

     

베드로는

수많은 예를 들면서

(범죄한 천사

홍수 때에 타락한 세상,

소돔과 고모라 등)

     

하나님께서

거짓 선생을

분명 심판하실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심판이

거짓 선생만이 아니라

     

불의한 자들과(9절)

     

육체를 따라서

더러운 정욕 가운데

행하며

하나님을 함부로

생각하는 자들에게도(10절)

     

임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자들은

자신들이

악을 행하지만

     

스스로 교만하며

더 비방한다.(10절)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심판받는 자는

     

공식적으로 드러난

거짓 선생만의 모습이 아니라

     

결국 나의 모습이고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특히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즉 십자가를

알고 있고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 중심으로 살고 있다면,

그 삶 가운데

분명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그 심판은

때로는

삶의 은혜가

메마른 모습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사는 모습도

일종의 심판일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끝까지

내 중심으로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록 완전한 모습은

아니더라도

 

내 안에

주님을 향한

진정한 소망과 사랑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분명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삶일 것이다.

     

그럼에도

은혜는 무엇일까?

     

인간의 선함과 의로는

불가능한

하나님의 건져주심과

구원하심이

늘 함께 한다는 사실이다.

     

사도 베드로는

거짓선생과

심판을 이야기하는 중에..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한다.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노아와 그의 가족을

보존하셨고(5절)

     

심판받는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룻을 건지셨다(7절)

     

하나님은 또한

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건지신다(9절).

     

이들의 삶은

물론

악한 세상에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조금 괜찮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하거나

대단한 삶은 아니었다.

     

특히

'의로운' 롯이라고(7절)

말씀하시지만

     

롯은 그렇게

의로운 삶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노아이든 롯이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소망하는

이들을 의인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구원하셨다.


악한 자들은

주를 부인하고(1절)

진리를 비방하며(2절)

스스로

교만하지만(10절)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바라고

하나님의 주권 앞에

엎드릴 수 있는

삶이었다. 그러한? '의로운' 자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로 구원을 베푸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완성되고

절정을 이루었다.

     

따라서

내 의를 자랑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이름과

의를 의지하고

사모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지금도 여러 가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구원도 베푸시지만..

     

나의 삶에 변화라는

구원?도 이루시며

     

나의 삶이

견고해지는 모습과

세상을 이기는

담대함이라는

구원도 주신다.

     

무엇이 진정한 은혜인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며

게을러 지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자

     

오늘도 열매를 얻을 수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의로

십자가로 인하여

구원과 열매가

주어지는 것이 은혜이다.

     

나는

이 귀한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그 은혜를 받았기에

더 두려워 떨며

주님의 주권과

말씀과 인도하심을

갈망하는 은혜일까?

     

그래서

그 은혜가

더 은혜되게 하는

삶일까?

     

아니면

십자가라는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오히려 거짓 선생들처럼

게으름과 자만과

내 중심적인 인생으로

살아가는 값싸고 헛된 은혜는 아닐까?

     

은혜 앞에 엎드리자!!

     

그리고

나 같은 자에게

오늘도

여러 가지 구원의 역사를

주시는

은혜를 기억하고

     

깨어서 살아가자.

     

그리고

은혜의 열매가

생명을 받았던 순간만이 아니라..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매일 매일의 삶속에

은혜의 열매와 구원이

맺혀지기를 소망하자.

     

그래서

오늘도

두려워 떨며

     

그 구원을 이루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자!!

     

분명

하나님은

그 은혜로

오늘도 나를 새롭게 하시며

그 구원의 열매들을

이루어가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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