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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with Coffee

나눔이 있는 공간

Writer's picture오천호 목사

[6/12] 영광스럽고 귀한 것(벧후1:12-21)

사도 베드로는

이 땅의 삶이

그렇게

오래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14절)

그는

전승과 다른 기록에 의하면

     

로마에 있으면서

복음을 전했고

     

박해 가운데

순교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이 실재적인

죽음을 의미하든

아니면 주님 앞에 서야 할

삶의 마지막이든..

     

그는 자신의 삶을

'장막'이라고 표현하며

(13, 14절)

     

'곧 떠날 것'이라고

말한다(14절, 15절)

     

주님 앞에 서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삶!!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주님께서

오실 날(재림)도

     

그렇게

멀지 않다는

의미가 되며..

     

그렇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깨어서

     

그 영광스럽고

소중한

죽음 후의 부활과

재림을

소망하며

살기를

기대했던 것이다.(15절)

     

물론

그러한 부활과

천국은

     

너무 영광스럽고

큰 것이기 때문에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16절)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만이 아니라

     

함께한 형제들이

경험하고

보고

들었던

     

변화산의 사건을

이야기 한다.(16절)

     

베드로는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변화산에 올라서..

     

매우 특이한 경험을 했다.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시는 것을 보고 그 신비한 은혜를 직접 체험했으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다(17-18절)

     

모든 생각과

경험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영광이며

소중한 음성이었다.

     

베드로는

우리가 추구하는 신앙이

어느정도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이 땅에서

하나님 때문에

행복하게 사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의 삶은

천국을 소망하는 삶이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삶이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역사가

오늘 함께 하는 삶이다.

     

그것을 이해하든

그렇지 못하든

     

신앙은

이 땅의 삶을

넘어서는

     

영광과 존귀와

능력이 있는 삶이다.

     

그리고

그것은

더 확실한 예언..(19절)

     

즉 성경의 모든 예언(말씀)도

마찬가지이다(20절)

     

말씀은

종교적인 교훈과

인생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다.

     

그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21절)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과

소망과 신비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예언

즉 성경은

사람의 뜻이 아니기에

사사롭게 풀 수 없다 (20-21절)

     

'사사롭게 푼다'는 것은

개인의 생각과

욕심대로 라는

의미도 있지만..

     

말씀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와

영원한 소망과 신비라는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의 사랑하는 성도들이

     

주님 앞에 서게 될 날을

깨어서 준비하기

원했고..

     

그 때에 얻게 될

영광과 존귀와

아름다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가슴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 땅의 삶도 그 영광과 존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체험하며 살기 원했다.

     

나의 삶을 돌아보아도

     

말씀과 기도와

순종가운데

     

여러가지 영광스럽고

소중한 은혜와

신비한 체험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장차 얻게 될

영광과

결코 비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미 경험한(주어진)

영광과 은혜도

쉽게 잊어버릴 뿐 아니라

     

장차 주어질

영광과 은혜..

     

그리고 오늘 함께 하시는

그 신비와

영광과

아름다움을

     

마음깊이 소망하며

기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을 본다.

     

내 문제와

오늘에 주어진 상황들과

     

내 손에 잡히는 것만으로

살고자 할 때가

너무 많다.

     

나는 정말 말씀을

성령안에서

     

그리고 그 영광과

귀함이 있는

     

하나님 나라와

그 신비한 은혜 가운데

이해하고

깨닫고

나누고 있을까?

주님

저를 오늘도 깨워 주셔서..

     

주님 앞에 서게 될

그 영광과 소망을

     

오늘도 품고

하루를 살게 하소서.

     

이 땅의 삶이

장막의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이미 주신 영광과 은혜와

이미 주어진 확실한 말씀을

     

오늘의 시간속에

체험하며

살게 하소서.

     

더 주님을 알게 하시고

     

그럴수록

주님의 영광과 임재와

그 신비를

더 깨닫고 알며

전하게 하소서..

     

저의 미련한 마음을

붙잡아 주셔서,

     

빛나는 모습으로

오늘 내안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기뻐하며

동행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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