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유다의 왕인 여호사밧과
북쪽의 왕인 아합은
아람이라는 나라를 막기 위해서
함께 힘을 모을 필요가 있었다(1-3절)
그래서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에 가서
아람과 싸우려 할 때,
여호사밧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고 제안한다(5절)
그때
아합왕이 데려온 400명의 선지자는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한다(6 절)
그러나 그 선지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자들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유다의 왕 여호사밧은
아합왕에게
다른 선지자가 있지 않냐고
말하는데..(7절)
그것은 진실을 말해줄
선지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합 왕은
미가야 라는 선지자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언제나
길한 일 즉 좋은 예언이 아니라..
흉한 일 즉 나쁜 예언만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8절)그래서
아합 왕은
미가야 선지자를 미워한다는 것이다.
좋은 예언만이 아니라,
나쁜 예언만을 말해주는 선지자..
그 결과
미가야 선지자는
결국 아합에게
처음에는
하나님의 진실이 아니라..
아합이 원하는 대답을 하며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비꼬는 말을 한다(11-12절)
아합이 말하는
좋은 일(예언)이란 무엇일까?
자신이 잘한다고 칭찬하며
자신의 계획을 찬성해주는
선지자의 말이 아닐까?
반면
그가 생각하는 나쁜 일(예언)이란,
자신의 잘못을 말씀하시며
고통이 있을 것과
그가 회개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아합이 생각하는
좋은 예언은 정말 좋은 일이며
나쁜 예언은 정말 나쁜 일일까?
물론 좋은 예언은편안하고
나쁜 예언은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모양이든
하나님의 생각은
선하시고
결국은
좋은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아합이 생각할 때
불편하고 불길한 예언이라고 하더라도
그 말씀은
그를 회개로 인도하는 좋은 일이며
아합이 생각할 때,
좋은 예언이라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더 아는
좋은 말씀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만이
좋은 말씀도 아니며
나를 편안하게 한다고 해서
나쁜 말씀도 아니다..
그것이 불편하게 들리는 말씀이든
편안하게 하는 말씀이든..
모든 것이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며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신다.
그것이 좋은 것처럼
보이는 예언이든
나쁜 것처럼 보이는
예언이든
모두가 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고
뜻이다
나의 삶은 어떠할까?
나에게 말씀은
어떤 모습으로 나가올까?
어떤 경우는
너무 불편해서
잘 다가오지 않을 때가 있고
어떤 경우는
너무 편해서?
즉 너무 큰 은혜여서
잘 다가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말씀을
나의 수준에 맞추어
조정하려고 하는
잘못을 범할 때가 적지 않다.
다시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자..
그것이 너무 과분한 은혜의 예언이든
불편한 말씀이든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품고
회개하기도 하고
또 감사하고 소망하기도 하자!!
그리고
그 말씀가운데
오늘도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하자..
내가 믿는 것은..
주님은
오늘도
그의 모든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먹이시며
나를 살리신다는 것이다.
오늘도
나쁜? 예언과
좋은? 예언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인정하고
그 주님을 기억하고
찬양하기 원한다.
그 주님께서
그의 모든 예언으로
나를 살리시고
나를 선하신 길로
인도하시는
이 하루가 될 것을
소망하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