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기자는
자신이 나이가 들고
힘이 없어지더라도...
자신이 백발이 될 때에도
주님의 힘을 다음 세대에..
주님의 능력을
앞으로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원한다고 기도한다(18절)
시편기자는
어릴 때부터 평생동안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일을
잘 감당했었다(17절)
그래서 이제
나이가 들고
인생의 모든 일들을
마친 후에는
쉬거나 멈출 수도 있을텐데..
그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주님의 이름과
그가 하시는 일을
전하는 사명과 섬김을
끝까지...
감당하기 원한다고
기도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내가 지치고
약해지는데..
끝까지 주님의 이름을
전하는 것!!
그러므로 시편기자에게
주님의 이름을 전하는 사명은
어떤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진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리이라.(14절)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15절)
주님의 이름으로 전하는 일이나
주님을 섬기는 사명이
어떤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고
기뻐하는 관계이며..
그의 진심이었다.
나는 어떨까?
목회와 나의 섬김과
내 사명?이
나의 일일까?
아니면 주님을 향한 사랑과
관계에서부터 나오는
나의 삶이며 전심일까?
나는 늙어서까지..
은퇴하고도
정말 주님을 전하는 일
주님을 높이는 일
주님을 예배하는 일을..
다음세대에 전하며
주님의 나라가
모든 곳에 임하게 하는 일을 위해
젊을 때처럼
헌신할 수 있을까?
나의 진심이
주님을 전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섬기는 것일까?
그런데
시편기자는 자신이
그러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주님께 기도한다.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며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21절)
'창대'하게 한다는 것은
단순히
많은 것을 가지고
많은 인정을 받는 것을
넘어서는 표현이다.
나의 영혼이
힘을 얻고
소망을 얻는 창대이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창대이다.
그는 하나님이
그를 위로해주시길 기도한다(21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치 죽은 자를 땅에서
끌어 올리듯이
나이들고 약해지는 자신에게
새로운 생명과 기쁨과
열망을
마치 부활을 주시듯이
날마다 새롭게 주실 것을
기대하며 믿고
소망하는 것이다(20절)
나의 사명은 무엇일까?
주를 기뻐하며
그 주님의 이름과 사랑을
이웃과 열방에
전하는 삶이다..
그 사명이 나의 의무와 책임이고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나의 기쁨이고
감사이며
내 평생의 진심이 되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진심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오늘도
나를 창대하게 하시며
나를 위로하시며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감당할수 있는 힘과
사랑과 은혜를
부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고 기대하는
복된 아침과
사명을 감당하는
하루가 될 것을
결단해 본다.